최근 폰으로 찍은 사진들.
2008/10/27 09:15 | 일상생활/잡상.. |이마트에서 찍은 물병사진.
사고 싶으나 가격에 좌절.

2008년 10월 19일.
훈련소 가기 전 아노리랑 피시방에 갔당.
민경이가 사진 찍어 보내달래서 사진 찍어서 보내줬다.
겨우 4주 훈련받고 나올 놈이 던파 못한다고 징징징징.

그리고 민경이가 내 손이 보고 싶대서 찍은 사진. 잘 찍힌거 같다.




하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지난 1월 28일 오전 열시에 작고하셨다. 주간 근무였던 탓에 출근했다가 집에서 연락 받고 조퇴한 이후 할머니의 장례식에 참가했다.
언젠가는 올 날이라고 제법 오래전부터 생각해왔고, 어쩌면 손꼽아 기다린 날인지도 모르겠다.
할머니가 더 이상 없는 작은 방- 이제 내 방이 될 -을 보며 현실로 와 닿는 이 느낌을 정확한 단어로 풀이해 내진 못하겠다.
도대체 할머니는 언제쯤 돌아가시냐는 저주를 품은지 수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기대만큼 후련하고 시원하기만 한 것은 아닌거같다.
국민학교에 입학한 이후 쭈욱 가족소개의 기회때마다 자연스럽게 다섯이라 말하던 식구수가 넷이 된 까닭일까. 주인을 잃은 화분들이 눈에 자꾸 밟힌다.
염을 하는 모습은 생소한 느낌이었다. 팔만 만져도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던 사람이 저렇게 팔을 떨구고 다리를 들어올리고 수의를 입혀도 숨소리 한번 내지 않는 모습을 보고 그제야
"아 죽었구나"
라고 새삼 느꼈다.
눈물은 한방울도 나지 않았다.
이젠 세상에 없는 사람이지만 할머니의 죽음은 내 눈물이 흐를 이유가 되진 않았다. 그리고 그래서도 안되었다.
허나 무엇보다 불쾌했던건 할머니가 약, 병원을 그리 찾고 그 금전적 부담이 모조리 우리 차지가 된 그 시간, 나날에도 얼굴 한번 안 비추던 - 나중엔 부조금 갖고 언성을 높이던 - 그네들이 서럽게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얼마나 값싼 눈물인가.
진심으로 불쾌했다. 저거야 말로 고인에 대한 모독 아닐까? 염하기 30분 전까지 이장 문제로 목에 핏대를 세우던 이들이 고인의 시체 앞에서는 통곡을 하고 우는 그 꼬락서니가
참으로 우스웠다.
그래서 난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또 그리 했다.
자식들에게 그토록 푸대접을 받아온건 할머니 본인의 책임이고 업이지만, 그 알량한 눈물은 역겨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랬는데
아, 이제 세상에 없는 사람을 더 흉봐서 뭐하겠냐마는.. 책임과 의무는 내 팽개친채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네들이 이제와 연장자고 형, 누나랍시고 아버지께 권리를 요구하는 그 모습에는 신물이 났다.
... 물려줄 유산이라도 있었다간 칼부림이라도 나지 않았을까(웃음)
급한 연락에도 불구하고 와서 애써 도와준 고씨와 월식이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한다.
둘, 피엠피를 다시 주문했다.
박살나버린 녀석 대신 M43 Navi 60g 로 주문했다. 예비 배터리가 두개나 있는 상황이 되었다.(웃음)
도저히 이녀석 없인 지루해서 검문소에서 견딜수가 없더라.
셋. 요 몇일 계속 앓았다.
식중독에, 감기몸살에, 술독에... 사나흘을 앓았다. 어제 새벽까지도 머리가 지끈거렸는데 지금은 목이 좀 쓰린거 외엔 거의 다 나은것 같다.
아프지 말아야지. 아프지 말아야지.
넷. 오늘 윙군이 국방의 의무를 지키러 떠난다.
오늘 올라가서 내일 군입대 한다던가. 뭐 그렇다던데.. 18일에는 고씨도 훈련소에 간다. 따라가볼 계획. 고씨가 다시 훈련소에서 나올때까지 아주 많이 심심하고 지루할것 같다. 4주 뿐이지만.. 그래도.. 고씨가 없이 지내는 일상이라니 많이 허무하고 지루할것만 같다.
다섯. 영종이가 스타첼린지에 진출했다.
본선까지 꼭 진출하자. 화이팅! 영종아 격하게 사랑한다!


요. 잘 지내냐.
넌 더이상 민간인이 아냐